얼마전 이곳에서 철학 논문으로 학위를 취득하신 우리나라 분과 (이렇게만 밝혀두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제목에 나온 것과 유사한 이야쪽으로 얘기가 흘렀었다. 우리나라 대학이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이것도 들은 얘기니 직접 부딪혀 봐야 알 일이다.) 워낙 학부생들 중심으로 운영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라 학부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과는 그것이 학부제라는 제도와 맞물려서 "절대적인 학부생 재생산"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 사실인듯 하다. 벌써 근 10년전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때 당시에도 이미 문을 닫는 학과들이 있었고, 이것은 다시 "향후 00과 교수충원 계획 없음"이라는 동분야 학위 취득자들에게는 암울한 소식과 연결 되었으며 여기저기서 "00대학의 xx학과가 yy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더라"라는 소식들이 들려왔었다. 이른바 "분과간 연계"라는 유행아닌 유행 (?)을 타고 또 여기저기서 연구계획에 "분과간 연구"라는 취지가 밝혀지면 연구비를 수령하는데 유리하다더라"라는 말도 많이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이와 관련된 글을 쓰는 이유는 그 철학박사님과의 얘기가 있고난 바로 다음날 (혹은 그날이었나?) 우연히 발견된, 학교 건물의 한쪽 구석에 외롭게(?)붙어 있던 포스터가 갑자기 생각나서다. (다행히 포스터가 그자리에 제대로 붙어 있어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이 포스터는 정선생과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가려 건물을 나서는 중간에 발견되었는데...행사가 행사이니 만큼 (무려 일종의 독일 철학자 대회다...:)) 큼직한 코팅이 된 (다른 게시물들이 A3 규격들이니 크기는 짐작이 가리라) 나름 디자인에 신경쓴 그런 포스터였다. 이 글의 맥락에서 중요한 점은 포스터에 언급된 사람이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이 철학대회에서 철학의 세부분야들로 언급된 부분들이다. 전통적인 철학 고유의 분야와 더불어 혹자 (누구겠는가 과학지식사회학자중 그 누군가다...:)) 가 일부러 깍아내리려는 의도로 한 말이겠지만 철학이 "과학의 시녀", 혹은 좀 좋게 말해서 "과학이 가시는 길을 닦는 길닦이" 노릇을 자처했을 때 우리들에게 익숙한 분야들이 눈에 띈다. 불현듯 벌써 17 혹은 18년전 학부 방법론 시간에 들었던 이른바 "실증주의 논쟁"에 대한 얘기가 떠오르고 다시 약 10년전 석사 코스웍때 들었던 "사회과학 철학"이라는 과목이 생각났다. 분과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 더이상 "사회과학이란 무엇인가", 혹은 "사회과학을 여타의 과학과 구분지워주는 부분은 무엇인가", 혹은 더 나아가 "과학은 무엇인가" 내지는 "'과학적'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좀 심하게는 "과학과 여타의 인간의 지식활동을 구분지워줄 그러한 것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이러한 류의 질문은 필요가 없는 것인가? 사회학 내부에 그 전설적인 실증주의 논쟁이 있었다던 40여년 전 많은 사회학자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을 이전의 철학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논의들로부터 빌려온 테제들을 기반으로 추구했었고, 일부는 위에서 언급한 질문들에 대해서 대답하는 독자적인 방식들을 발전시켜왔다. (나는 여기서 주로 과학사회학자 내지는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새삼스럽게 철학대회를 알리는 포스터 속에서 철학자들이 아직도 (?? :)) 이 분야에 대한 논의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상기되었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자칭 사회학자가 되려는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서 현재의 철학자이 어떻게 논의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아니 알고 있는가는 어쩌면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야 몇개의 저널들을 훑어보면 될테니까...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전에 사회학이 태동하던 시기, 그리고 사회학의 내부에서 있었던 자기정체성 찾기논쟁때 그랬던 것처럼 분야를 넘나드는 그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끼며 또 그것을 실행할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될 것이다. 어쩌면 분과간 연계 (적어도 철학과 사회과학사이)는 이전에 이미 있었고, 철학은 자신의 분과테두리를 넘어서는 지식생산의 맥락 (궂이 현학적인 단어를 도용하자면 인식적 문화 Epistemic Culture)에서 응용되어 왔었다. 내 짧은 생각이지만 철학은 좀더 많은 김용옥을 생산하지 않아도 대학 안에서 자신의 청중들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철학은 언제까지 인접분야의 비전문가들이 자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제멋대로 000에 대해 떠드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 이런 활동에 만약 혹자가 응용분야라는 명칭을 부여한다면 그렇다...철학은 이전에도 충분히 쓸모가 있었고, 지금도 충분히 쓸모가 있다. 궂이 새롭게 치장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들이 학교 한 구석에 외롭게 붙어 있는 멋들어진 포스터 처럼 (벌써 이 상황 자체가 뭔가 말해주는 것 같지 않은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철학은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의 말에 몰래 (?!) 귀를 기울여 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지 싶다. 그들이 단순히 얘기를 들어줄 청중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할 상대를 찾는다면, 누가 아는가 그 몰래 엿듣던 청중들이 반갑게 맞아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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