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30일 일요일

사자 (죽은 사람)들의 별 달?


ㅋㅋㅋ....달 (재?) 개발을 둘러싼 부동산 붐이 불기전 벌써 한 장의산업체 (ㅋㅋㅋ)가 나섰다. 1000만원 정도면 정말 글자그대로 "달에 뼈를 묻을" 수 있을 듯...1그램이라지만...그리고...아직은 약간 유골이 달까지 갈 확률에 문제가 있는듯...ㅋㅋㅋ

2008년 3월 25일 화요일

Problem of color 3

기사는 Der Spiegel.

재미있는 부분은 도덕적으로 민감한 문제의 경우 다른 사람을 인용하면서 (이 경우에는 Obama가 이 이슈를 제기했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그리고 그의 연설을 요약 인용함으로써) 간접적으로 Ansprechen 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관찰되는 부분인데...민감한 (혹은 민감하리라 예상되는) 사안인 경우 자신의 견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견해인양 인용함으로써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특정한 사안을 테마화하기"가 사용된다. 예를들면 "000가 그러는데 xxx가 yyy 했다더라"라고 했을때 (이것은 본격적인 Gossip이나 storytelling 이 시작되기 전의 일종의 Presequence의 first pair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상대방이 이것을 uptake하면, 즉, "아 그래? 그런데?" 등으로 Presequence의 second pair part를 통해서 Gossip이나 storytelling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는 일종의 Go head sign을 낼 경우 Speaker와 Hearer간의 일종의 "공모" (ㅋㅋ)에 의해서 이후의 대화가 진전되어 간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의 경우...정치행위자들 뿐 아니라 대중매체도 자신들이 이슈제기자로서 예상되는 도덕적, 정치적 위험을 피하면서 해당 이슈를 제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러한 "인용하기"를 사용하는 것이 빈번히 관찰된다.

글로벌 8학군????? 영재 영재 영재를 찾아라!!!!...ㅋㅋㅋ


영재들이여 모여라....미국 대학들은 이제 국내 대학입시에서 함께 생각해도 될 그런 대상이다...국내 대학중 어디를 갈 것인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미국 굴지의 대학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ㅋㅋㅋ. 얼마전에 텔레비젼에서 좀 오래된 화면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이 합숙하면서 국제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그때 덧붙여졌던 나레이션이 아마 내가 제대로 기억한다면 "전세계에서 스타크래프트 선수권 준비를 위해 이렇게 준비를 하는 선수들은 한국팀이 유일하다" 였다. 그리고 국제 대회에서 혜성처럼 떠오른 러시아의 강호를 물리치고 당당히 (?!) 우승을 한 자랑스런 한국인...당시 나이가 20대 후반이었고 이제 이 게임계에서는 은퇴할 나이가 다된 선수가 이변을 일으키고 우승한 것으로 나레이션은 계속되었다....
당시 들었던 하나의 생각...스타크래프트는 누가 만들었을까? 온라인 게임과 관련한 아이디어와 인프라는? 이러한 종류의 게임들의 개발 및 유통 경로는? 한국인들 (혹은 한국계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 각계 각 분야에서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이제 뭐 새로운 일도 아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다만 깔려있는 멍석은 점점 두터워지고 넓어지는 반면에 국내에 (그나마 혹은 그 어떤 형태로라도) 있는 돗자리나 깔깨들은 별 생각없이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누군가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나서 갑작 스럽게 퇴조하는 양상을 보이면 항상 꼬리처럼 달리는 말 "고질적인 인프라의 부재"라는 이야기가 또 떠오른다.

영재를 발굴해서 큰 멍석에서 놀도록 보내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멍석위에서 노는 사람들은 또 영재를 알아보며, 영재를 영재로 만들어줄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영재도 영재를 알아봐줄 "적정한 층"을 전제로 하고서야 영재가 될 수 있고, 그의 업적이나 경험이 이러한 "적정한 층"을 통해서 누적되고 재생산 될 수 있다는 부분이 아닐까? 천재적인 과학적 발견및 발명들을 알아봐준 것도 궁극적으로는 천재적이지 못한 "하챦은 형들"이 아니었던가...(물론 진짜로 하챦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ㅋㅋㅋ) 이 하챦은 형들이 놀 멍석도 필요하지 않은가? 천재들도 가끔 그 멍석위에서 같이 놀고 말이다.

뭐 글로벌 시대에 네멍석 남의 멍석이 어디있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예를들어 학자들의 글로벌한 저널 시스템 및 출간물들의 중심부에 미국의 유수한 대학들이 있고, 이 대학들이 운용한다는 전설처럼들려오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운용자금들을 생각해보면..."네 멍석, 남의 멍석이 의미가 없다"는 주장은 한번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들 미국 대학들을 "인류"(일류가 아니라...ㅋㅋㅋ)대학이라고 부르기에는...(실제로 뭐 실질 적으로 인류대학이기는 하지만...ㅋㅋㅋ) 그래도 뭔가 꺼림직하지 않은가?

아님...이런 광고는 어떤가...일부 사립고교 당국자 여러분...전세계를 상대로 광고를 하는 겁니다..."대한민국 000 고등학교 미국 아이비 리그 대학 특설반 모집, 전과목 영어...주요과목 노벨상 수상자 강의, 미 해병대식 생활관리로 (작은 글씨로: 전공불문) 100퍼센트 입학보장" 이렇게 말입니다. 그리고서...전세계 고등학교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겁니다. 아이비 리그에 가려는 학생들은 꼭 한국고등학교를 거쳐야 하도록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비리그에 들어갈 수 없도록 말입니다. 이왕에 놀꺼 한번 크게 놀아보는 겁니다...혹시 압니까? 다른 나라 중학교에 "한국 고등학교 (좋은 학군...이름을 붙여야겠군) 입학 준비반"들이 생겨날지 말입니다....ㅋㅋㅋ

2008년 3월 24일 월요일

색깔론에 대한 Obama의 입장

인종주의적 이슈로 미국정부와 미국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흑인 목사와의 관계때문에 최근 도마에 올랐던 오바마의 관련 이슈에 대한 연설, 이 연설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적인 훌륭한 연설 중의 하나인 것으로 좋은 평가를 들었는 모양임. 지금까지 오바마는 의식적으로 (?) 인종과 관련된 문제를 선거이슈화것에 거리를 두어왔고 이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을 하는 것도 자제해 왔다는데 아무래도 이 목사의 교회 교인이었다는 것이 이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도록 만든 듯. (관련기사는 Der Spiegel) 누구 말마따나 정확히 동일한 연설을 백인 후보자가 했다면...??? (그 자신이 도입부에 밝히듯 그는 그냥 흑인이 아니라 케냐출신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를 둔 그런 인물이다. 이것은 이 연설에서 차후에 그가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아뭏든...200여년전 미국이라는 나라가 형성되던 당시에 제시되었던 이상과 현실 (여기서 엄연히 존재했던 그리고 존재하는 차별과 갈등을 지적하고 있는데...)의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이 역사상 계속되어왔고 자신의 선거참여도 역시 이러한 역사적 연장선 속에 있다는 도입부의 말이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2008년 3월 23일 일요일

의례와 의도? 종교와 정치?


종교와 관련된 휴일이다보니 본의 아니게 종교와 관련된 일을 로그로 남기게 되었다. (:))

카톨릭 미사에 참석해본 사람들은 모두 알수 있듯이 행해지는 의례의 절차 뿐 아니라 각각의 단계에서 신부님들과 신도들에 의해서 복창 (?!) 되는 어구들도 정말 많은 부분 정식화 되어 의례화 (!) 되어 있다. 거의 자동화 되어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헌데 최근 (독일 출신) 교황께서 라틴어 의식을 각각의 교구들에서 행할 것을 종용하신 후에 새삼스레 문제가 되는 구절이 있는 모양이다. 바로 "...를 위해 기도합시다"와 관련된 부분인듯 한데 이 부분에 유대인과 관련된 구절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즉, 오래된 라틴어 의례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당신의 뜻을 깨우치도록 하소서" 정도에 해당하는 구절이 들어 있는 모양인데...이미 "선민"으로서 The God의 뜻대로 살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이러한 구절이 기독교에 뿌리깊은 반 유대인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을 뿐아니라 나아가 유대(교)인 대상의 포교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 유대교 랍비들의 해석인가보다.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그저 오래된 라틴어 의례에 들어 있는 문구에 불과한 이 문장이 이런 종류의 파란을 일으키는 것이 당사자들에게는 송구스러운 일이나 흥미로와 관련 인터뷰 기사와 함께 기록해 둔다.

이 기사가 정치카테고리에 분류 되어 있는 것도 흥미롭다. (:))

부활절과 "부활절 주간을 의미있게 보내기"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어 (아니다 꼭 그런것만은 아닌듯...내 주변에는 기독교인들이 항상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 및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훨씬 많았다.) 별관심을 가지지 않아서였겠지만 이곳에서 그 많은 해를 넘기면서 부활절을 전후로 해서 노는 날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왜냐면 우선은 멘쟈가 문을 닫고 도서관도 문을 닫으니 책 대출 및 반납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신경을 썼었다.) 심지어는 Karfreitag이 무슨 날인지도 신경을 써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휴일중 하루가 부활절이니 내 상식이 맞다면 예수께서 부활하신게 돌아가신지 3일 만이라고 했으니 Karfreitag이 아마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날이겠다고는 생각했었지만 기독교 인이 아닌만큼 정확하게 알고자하지 않았었다.
집에 가면 버릇처럼 하는 "텔레비젼 켜놓기" (ㅋㅋㅋ) 때문에 어제는 반쯤 무의식적으로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한 The Body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RTL II 였었나 그렇다...ㅋㅋㅋ) 그 내용이...아마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 보았다면 이 성스러운 주간에 방영되기에 적절한 내용인지 큰 의심을 가졌으리라. (예루살렘 지역에서 한 무덤이 발견되고 그 무덤에서 발견된 유골이 예수의 시신으로 추정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영화이므로...반데라스씨는 여기에서 교황청에 의해서 특수 임무를 띄고 파견된 신부님으로 나온다. TT)...그래도 Karfreitag에는 Pro7 이었나? Die Passion Christi (The Passion of Christ) 를 해줬었는데...(이 영화는 묘사된 장면 자체보다는 --이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어서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 조차도 알고 있었을 정도다...심지어 예수님 대신에 십자가를 메었던 사람 (역시나 이름은 모른다)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할 정도니까..--언어 자체가 등장인물들의 당시 지역언어, 즉, 아마도 아랍어와 라틴어일 것이라고 추정되는...TT로 되어 있다는 점 만으로도 독특했다.)
아뫃든 새삼스럽게 종교계와 일부 정치인들이 이 사설텔레비젼방송들에서 성스러운 주간에 방영하는 영화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왔나보다. "지나치게 폭력적인 오락성 위주의 영화들이 신자들의 종교적 감정을 해칠 가능성"에 대해서 지적한 모양인데....생각해 볼 노릇이다.
첨부된 사진은 아마도 Karfreitag 우리나라 (한국)의 어느곳이지 싶은데..."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의 뜻을 기리고 있는 것인가? 어찌되었든...정말 대단한 "종교성"을 가진 한국인들이다. 그저 휴일인 듯 한 이곳의 느낌 (적어도 텔레비젼에서는 그렇다...)과 정말 크게 대조가 되어서 올려놓아본다. (출처는 Der Spiegel)...20000명의 기독교인들이 그것도 비를 맞으며....물론 나도 "다른 종류의 신념"때문에 비를 맞으며 무엇인가를 해 본 적은 있지만...대단하다....하긴 대한민국에서 이만명 모인 것으로 뭐 대단하다고 할 것까지 없을지는 모르지만...어찌 되었든 이들이 모두 (내가 알고 있기로) 예수의 뜻을 깊이 새겨주고 그 뜻이 지상에서 펼져질 수 있게 하는데 노력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 위의 사진은 연휴기간중 있었던 "독일군인 아프카니스탄 파병 반대"집회의 장면....

2008년 3월 20일 목요일

자치권 쟁탈 투쟁 vs. (단순) 폭도

같은 행위를 놓고서 이렇게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어쩌면 이리도 각각 사용하는 시나리오들이 비슷할까? 
첨부된 비디오는 최근 티벳의 수도에서 있었다는 불행한 일에 대한 중국 공영 중앙방송국의 영어 방송이다.

티벳 수도 라자의 어느 거리 (최근 비디오)

모든 외신 기자들이 중국 정부에 의해서 이 지역으로부터 피신을 당한 (?) 가운데...가장 최근에 이 지역으로부터 나온 호주 여행객에 의해서 찍힌 테벳 수도 어느 거리의 모습이다. 역시 이 장면들 자체만으로는 뭐가 뭔지 알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 언론사들의 논평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 호주 여행객이 현장의 상황을 나름 설명하는 것을 한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가 상점들을 부수는 사람들의 카테고리를 어떻게 분류하며 그들의 행동을 무엇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는지, 그리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행동에 어떤 동기를 "갖다가 붙이는지" 혹은 "부여"하는지 등등)...이를 통해서 그는 "도대체 여기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야기 가능하게,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이해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나저나 우리나라 광주항쟁때의 사진 및 영상물도 그 자체만으로 본다면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듯....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다른 점이 있다면 기록할 수 있는 매체들의 다변화 때문에 이런종류의 영상물들은 80년 및 90년대 천안문 사건 (?)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용이하게 유통된다는 점이다. 이 영상물만 하더라도 물론 방송사에 의해서 방송된 것이기는 하지만 바로 Youtube에 올라왔다.

서로다른 Categorization Devices들?!


Collection of categories와 Category-bound activities, 그리고 View Maxim 및 Hearer Maxim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사례. (다음, 오마이 뉴스 클리핑)

Problem of color 2: 대한민국 어느 학교에서의 (머리카락) 색깔론?!


세상에는 정말있는 일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뭐랄까...그냥 헛웃음이 나오는 일들이 많다....어찌되었든 이런 종류의 일을 벌인 학교당국자들이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는 한번 살펴볼 일이다. (출처는 네이버, 한겨레신문 스크랩)

블로거들...사회네트워크 분석가가 되기를 강요받다?!


인간들간의 관계 및 그 관계를 형성하는 인간의 활동들이 (궁극적으로) "사전에" 잘 정의되고 목록화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 입각한 친절한 방문자 차등 그룹화 서비스! (ㅋㅋㅋ 관련 Spiegel 기사) 우리나라 싸이인가 거기서는 뭐 일촌맺기 이런것으로 차등화를 하는듯 하기도 하던데...읽어보니 이 새로운 그룹화 서비스는 좀더 세밀한 설정이 가능한 모양이다. Der Spiegel (Online)의 기사들 중 어떤 것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 회사의 모토대로 슈피겔의 독자들은 정보를 많이 얻어서 좀더 똑똑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ㅋㅋㅋ...하여튼 이런저런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뇌가 약간 좀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Spiegel-Leser wissen mehr 라기 보다는 Spiegel-Leser denken (vielleicht :p) mehr... ㅋㅋㅋ

Facebook이라는 서비스가 꽤 널리 퍼진 서비슨가보다...

갑자기 Harvey Sacks가 분석했던 자살방지 핫라인에 걸려온 전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왜 자신들이 주변의 친지들이나 배우자들에게 자신의 상황들을 얘기하지 않고 이 핫라인을 통해서 자신들의 "자살할 지경인" 상황에 대해서 호소해야하는지를 accountable하게 만드는 행위들이 연상된다. I have no one to turn to....

국내/외 인터넷 포털들의 Textual Ecology




긴웹페이지를 캡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한 김에 한번 써볼겸 국내 인터넷 포털 1위라는 네이버와 2위 다음 그리고 미국 MSN 페이지를 한번 캡춰해서 올려본다. Textual Ecology라는 개념은 우선은 텍스트분석을 하는데 있어서 기존의 내용분석에 의해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들을 포괄하는데 유효할 듯하여 내가 만들어낸 신조어라고 생각했지만....구글링을 하여보니...몇몇 학자(?)들에 의해서 비슷한 텍스트적 현상을 포착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듯...좀더 발전시켜볼 여지가 있는 개념인듯 하다. Paratext라는 개념들도 쓰이는듯 하고...역시 Linguistics쪽에는 문외한이다보니...ㅋㅋㅋ

아뭏든 Textual Ecology를 살펴봐야할 필요성에 대한 기본적인 착상은 이것이 단순히 텍스트를 2차원 공간상에 배치하는 문제를 넘어서 실제 어떤 형태의 텍스트를 어떻게 배치하는가가 행위자들이 그 텍스트로 무엇인가를 행하는데 있어서 (What to do things with text?) 텍스트의 내용과 함께 그 의미의 형성 및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웹문서가 아닌 기존의 과학적 문헌들을 예로 든다면 각주들은 본문과는 구분되는 위치에 (텍스트의 하단이나 혹은 전체 논문의 말미에) 할당될 뿐아니라 폰트의 크기도 다르게 설정되고, 내용에 있어서도 본문의 내용과 여러가지 의미에서 (이게 또 중요하다) "관련은 되어 있으되" 본문에 넣기에는 "거석한" (ㅋㅋㅋ), 즉, 본문에 들어간다면 전체적인 논지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흐르게 만들 수도 있을 (이것은 "각주를 각주이도록 만드는" 많인 특성들 중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한 내용들이 많다. (그러나 어떤 논문의 경우에는 각주에 오히려 주옥같은 착상들이 있는 경우들도 있다...ㅋㅋㅋ...그리고 본문의 내용이 지나치게 축약적이거나 radical한 구분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면 각주에서 이에 대한 전제를 단다던지 아니면 그 주장을 상대화시키기도 한다...비겁하게...ㅋㅋㅋ...) 아뭏든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과학적 Textual Practise들만 보더라도 Textual Ecology를 통해서 인간들이 그 안에 쓰여진 내용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행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유추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텍스트 분석을 위한 착상이 현대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웹페이지들에서의 인간의 Textual Practise들을 분석하는데 과연 성공적으로 확장되어 적용될 수 있을것인가? 

2008년 3월 19일 수요일

긴 웹문서를 캡쳐하는데 유용한 무료 프로그램

파파라찌란 프로그램이다.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하시는 분에게 박수!!!

와우! 내린다고 예측했던 원화대비 달러환율이...





차..암 경제 전문가들이란...TT...어제 Welt der Wunder 였었나 텔레비젼에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어떻게 봐야할지, 즉, 그가 정말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예측했던 것으로 봐야 할지 그냥 뒷걸음질 치다가 뭐 밟는다는 식으로 극도로 추장적으로 오만가지의 해석의 여지가 있는 문장을 만들어냈을 뿐인데 후대의 그를 추종하는 (ㅋㅋ) 사람들이 거기에 의미를 갖다붙인건지에 대해서 짤막한 다큐멘터리가 재재재재재방송 (ㅋㅋㅋ)으로 나왔었는데...경제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과 노스트라다무스는 한 부류의 사람들인건가? 

어찌되었거나 지난 2주일 사이에 원화대비 유로화 환율이 200원이 넘게 올랐다...TT
이미 그전부터 미국 신용금융시장의 조짐이 않좋다는 소식들은 계속있어왔고 미국시장의 불경기에 대한 얘기들이 있어왔지만...이것참...
특히나 다른 주요 통화들의 달러대비 환율이 그래도 비율상으로 유지되거나 많이 내린 반면에 (예를들어 현재 유로화 대비 달러는 거의 1.6 대 1이다. 텔비에서는 미국으로 쇼핑여행을 가는게 유리하네 아니네 하는 딴나라얘기가 나올 정도다. TT) 우리나라 원화의 가치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떨어진 것은...아직 집에서 돈을 받아쓰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심리적으로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커피 한잔이라도 줄여야 한다...감자칲이나 옥수수 칲도 1.39 유로짜리에서 0.99 유로짜리로...그나마 좀 "의식적"으로 살면 같은 제품을 이 가격에 구할 수 있다는 데 위안을 삼아야 하는건가? 학생을 일초라도 빨리 탈출해야만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TT)

그다지 호들갑들은 아니지만 독일 언론들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어서 현재의 미국 금융시장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자국의 경기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예측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뭏든 국내 2위의 인터넷 포털 다음이 경향신문의 기사를 따온 것을 나는 여기 다시 옮겨 놓는다. (인터넷에서의 이 "인용행위" (일명 퍼가기)는 분명 우리의 "일상적인 실재에 대한 지식 혹은 상"이 형성되는데 주요한 활동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텍스트 및 멀티미디어물의 "인용행위"는 아마도 여타의 "요약을 기반으로 한 인용행위"와는 또다른 형태의 것일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좀더 구체적인 분석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아래로 스크롤 해야하는 긴 웹페이지를 어떻게 한번에 한 그림파일 (jpeg나 뭐 그런것...)로 스크랩할 수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 이른바 어떤 웹문서의 textual ecology (ㅋㅋ)를 보려면 이런 캡춰가 필수적일텐데 말이다.

덧붙여서...****

다음과 같은 인터넷 포털에서 이렇게 신문스크랩 (그렇다 이것은 인용이라기 보다는 스크랩에 가깝다)을 해주는것은 어떤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대한 해결책 (Lösung)일까? 번득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텔레비젼에서 시청자들을 "채널에 고정시켜놓기"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방송(사)에 대한 충성도 확보하기")가 중요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심지어 독일의 모 방송은 광고가 몇초 남았는지 친절하게 화면 구석에 카운팅 해주기도 한다....TT) 포털에 들르는 (불특정의 잠재적) 방문객을 "잡아놓는" 것이 인터넷 포털들 (국내 뿐 아니라 yahoo나 MSN과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에게도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주요 일간지들이 각각의 인터넷 서비스들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방문객들은 클릭 한번이면 언제라도 그 신문사의 홈페이지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만일 다음과 같은 인터넷 포털에서 이런방식의 뉴스클리핑이 아니라 URL을 링크해주는 방식을 택했더라면 (만일 "정보링크"가 그 기능이었다면 이것은 직접적인 뉴스 스크랩이 아니라 인터넷에서는 이런 식으로도 가능한데) 어떻게 될까? 하이퍼 링크를 통해서 다음 인터넷 포털 방문자는 링크된 신문사 웹페이지의 "방문자"가 될 것이다. 물론 다시한번 클릭 한번이면 다음 인터넷 포털로 돌아올 수 있겠지만 그것은 역시 보장된 것이 아니다. 역시 여러 신문들을 "오려붙여" "다음 나름의 웹페이지 형식에 맞추어 재배열 하는" 방식 (이것을 궂이 명명한다면 Recontextualization이라고 할 수 있을까?)은 URL 방식과 비교해 보면 인터넷 포털 입장에서 방문자를 묶어두는데 좀더 "안전한" 해결책일 수도 있겠다. 

덧붙여서 2

이러한 신문 스크랩의 경우에는 마치 CEO들을 위해서 비서들이 주요 일간지를 브리핑해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 내 기억이 맞다면 Yahoo와 같은 경우에는 회원들이 사전에 설정하는 메뉴를 통해서 이른바 "맞춤형 뉴스 클리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선전했었는데...실제로 로그인 하면 처음 시작 화면의 레이아웃 뿐 아니라 클리핑 된 신문기사들의 우선 순위들도 다르게 서비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맞춤형 뉴스 클리핑이 지금은 대부분의 인터넷 포털들에 의해서 제공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아닌가?

2008년 3월 17일 월요일

대학은 실험실??? (Kommunikationsspiel in einem Sprachspiel namens Experiment) 1-3


ㅋㅋㅋ 거짓말쟁이들...결국에는 뇌 속을 들여다 볼거면서...ㅋㅋㅋ...
그나저나...피실험자로 아르바이트하면 한달 커피값은 충분히 벌겠는걸??

Design of everyday things

제목은 Donarld Norman이라는 사람의 책 제목과 동일하다. Norman의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많은 것들 중에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힘들게 디자인 된것과 직관적으로 사용하기에 용이하게 디자인 된 것들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여주면서 (이 책의 삽화중에 "매져키스트를 위한 주전자" 였었나...어쨌든 물붓는 주둥이 쪽에 손잡이를 붙인 주전자 스케치를 보고서 혼자 킬킬대며 한참을 웃은 적이 잇따. ㅋㅋㅋ) 디자인에 있어서 "아주 간략하게 말하면 making things visible"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오늘 Der Spiegel에 관련된 주제의 기사가 나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언젠가 학교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같이 탄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가려고 하는 층과는 다른 층을 실수로 눌렀는데 매우 쑥쓰러워 하기에 "왜 엘리버이터에는 버튼을 잘못 눌렀을때 취소하는 버튼은 없는걸까요...쯪쯪"하며 너스레를 떤 적이 있었는데....(ㅋㅋㅋ) 기사를 읽어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만은 아닌듯 하다. 그나저나 우리나라 포항 (?)의 어느 건물에 이 "취소"기능을 가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모양인데...취소 버튼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닌듯...ㅋㅋㅋ

2008년 3월 14일 금요일

어느날 집앞 버스 정류장에서의 대화

이틀전인가 짚앞 버스정류장에서 있었던 짤막한 대화상황을 여기 재구성 해놓는다. 녹음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ㅋㅋㅋ

(Gegen viertel vor neun Vormittag)
1 A: (Guckt den Fahrplan und ihre Armbanduhr)
2 A: ist die linie zwei und zwanzig vorbeigefahren?
3 B: e::hmm (---) ich bin erst seit zwei oder drei minuten hier.
4 (0.5)
5 A: ja dann die kommt bestimmt denke ich mal. hh.
6 (ca.60 Eine Linie 22 taucht auf und kommt näher)
7 A: (Gesicht zu B Lächeln)
8 B: (Gesicht zu A  Zwinkern)

인간 대화의 엄청난 유연성...ㅋㅋㅋ...2번째 줄의 "질문"에 대해서 크게 3개의 응답이 있을 법하지만 (Ja, nein, ich weiß nicht :)) 3번째 줄에 있는 발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 이 상황. 여러 노선의 버스가 서는 정류장에 있어본 사람이라면 3번째 줄과 같은 표현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

Nonverbal한 부분들, 예를들면 A가 도착했을 때 B가 어떤 행색으로 (:)) 정류장의 어느부분에 어떤 자세로 서있었는지, 즉 "doing 'wating for a bus'"를 하고 있는 것으로 자신을 accountable 하게 하고 있었는지도 좀더 구체적인 MCA를 위해서는 중요할 것이다. (물론 A의 행색도 중요하다...ㅋㅋㅋ)

참조)
Coulter, Jeff (1977) Transparency of Mind, PSS Vol.7 No.4 p.339

Linus: Do you wnat to play with me, Violet?
Violet: You're younger than me. (Shuts the door)
Linus: (puzzled): She didn't answer y question.

A: Would you like to go with me to the party at Al's place?
B: I'm washing my hair.


Apple iTune을 둘러싼 특허권 소송과 Text in context

미국의 특허법이 구체적인 결과물 뿐 아니라 상당수분 추상적인 아이디어에까지 특허권을 인정하고 있어서 이런일이 자주 생기는 모양이다. (이런종류의 소송으로 먹고사는 인간들도 있는 모양이니...ㅋㅋ)

어찌되었건 ZapMedia라는 회사는 이른바 Dotcom들이 한창 생겨나던 무렵 즉, 1999년에서 2001년에 걸치는 시기에 지금 애플이 추진하는 식의 인터넷을 통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소스 공급을 골자로 한 컨셉(디지털 음원 저작권보호와 관련된 소프트웨어 컨셉을 포함한...) 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제품화를 시도했었다고 한다. (이당시의 특허출원 내용은 여기) 그러나 Dotcom이 거품이 빠지고 당시로서는 이 계획을 현실화할 인프라의 부족이 맞물리면서 이 회사 자체가 시장에서 사라졌었나본데 이제 7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동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Apple을 상대로 특허권 소송을 제기했단다. 그래도 상품화를 시도했었던 회사이니 다른 특허권 사냥꾼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시장에서 실패한 회사가 어느정도는 전략적으로 이 특허권 소송을 준비해왔다는 해석이 있는데, 바로 이 회사가 시장에서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던 2005년에 (당시 Apple은 멀티미디어 온라인 마케팅에서 이미 유래없는 성공을 거두고 있었단다.) 2000년에 출원했던 특허에 몇가지를 덧붙였다는 것 (이 덧붙인 부분들은 여기)이 그 근거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즉, 상품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소송을 준비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 회사가 드디어 출원된 특허에 대한 특허권을 최근에 인정받았다는데 (그나저나 왜 이렇게 오래걸리는 건가 특허권 인정받는게) 그 특허권을 인정받은 바로 그 다음날 Apple 측에 바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관련기사는 여기)

자...특허를 출원했던 아이디어와 관련된 귿들과 그래픽들은 Text들이고 그 텍스트들은 1999년에서 2000년의 특정한 기술적, 법적 맥락에서 작성된 것들이지만...특허권을 인정받은 오늘날 그 텍스트와 그래픽들은 현재의 기술적, 법적 맥락에서 새롭게 해석될 텐데...
불현듯 다음과 같은 우리 어머님 말씀이 떠오른다. "내가 어렸을 적에 만화책에서 읽었던 것들이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현실이 되었다." (ㅋㅋㅋ)도대체...그럼...그냥 상상한 것과 특허를 받을만한 아이디어사이에는 그 어떤 경게가 존재하는가? 예를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비행물체에 대한 스케치들을 꽤 했었고 그것을 "현대의 기술"로 복원했을 때 하늘을 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행기의 시조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말이다. (나는 이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겠다. ㅋㅋㅋ) 또 비슷한 기술적, 문화적 맥락을 공유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특정한 상품이나 과학 및 기술적 아이디어에 있어서 상당수준 비슷한  Vorstellung을 가질 수도 있을 텐데 과연 "우연히 비슷한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동시적으로 만들어지는" 그런 상황은 완전히 배제될 수 있는 것인가? (실제로 Thomas Kuhn적인 의미에서 Paradigm을 공유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우연한' 동시발견 및 발명들이 이루어져왔었다.) 

아뭏든 특허권 인허가를 담당하는 사람들과 이러한 종류의 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 걸까? 궁극적으로 이것은 특정한 맥락에서 작성된 텍스트를 또다른 특정한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될텐데 (사실 어떤 사람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했네 안했네 하는 문제는 많은 법학자들이 주장하는바에 다르면 이들이 법적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서는 부수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그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어떠한 "Practical Reasoning"의 과정이 개입되는 것일까? (아마도 이런종류의 질문에 대답하는데 적당한 자료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심지어 관청에서 행해지는 행위들이니...그러나...과연 불가능할까?) 

나아가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그리고 특허를 출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우선 일차적으로) 그들의 'Originality'를 확인할 수 있으며 그것을 텍스트를 통해 '주장' 및 '정당화'하는가? (이것은 상대적으로 자료를 구하는 것이 용이할 수도 있다. 특허출원을 둘러싼 회의들이 있을 것이고, 또 궁극적으로는 작성된 텍스트 자체가 그 originality를 한편으로는 '주장하는데'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심사하는 사람에게 '용이하게 이해되도록' 구성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8년 3월 13일 목요일

건널목에서 길 건너기와 Membership Categorization Analysis


길건너기, 줄서기 등에 대한 글을 읽다가 갑자기 길건너기에 대해서 내 나름 ethnomethodological 한 분석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는 것이 상기 되었다. email 안에 섞여 있다가 언제 사라지거나 찾기 어려워 질 지 모르니 여기 꺼내 놓는다. Jörg도 그다지 나쁘지 않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다시 읽어보니 당시에는 MCA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분석에 있어서의 착상 자체는 MCA적인 방식을 상당히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하나의 사회적 상황 혹은 Scene을 한편으로 창출(혹은 연출)해내고 다른한편으로는 이해가능한 것으로 (즉, 궁극적으로 accountable 한 것으로) 만드는데 category와 category-bound-activity들이 어떻게 그 resource들로 사용되는지, 그리고 그 사회적인 scene이 역으로 그 category의 사용을 정당화(?) 해주는 Indizien들로 reflexive하게 기능하는지 (이 과정-혹은 Member들의 methodic한 추론행위- 전체를 Garfinkel은 Documentary  method of interpretation이라고 개념화 했는데)를 그나마 어느정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제시된 참고 문헌에 Harvey Sacks의 MCA와 관련된 참고문헌들이 덧붙여 진다면 (특히 그중에서도 Viewer's Maxim과 관련된 부분) 좀 더 충실한 분석이 될 수 있겠다.

Karl Marx 사망 125주기...


갖다붙이면 일년 365일이 모두 무슨 (역사적) 사건과 결부되겠지만...어찌되었든 오늘이 칼 맑스가 사망한지 125년 되는 날인가보다.
정작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을 찾은 사람들은 겨우 11명이었다고 전해지지만(오늘 그의 생애와 관련된 Der Speigel의 특집기사를 보다가 알게 되었다.)...아직까지 그의 사망일이 집단적 기억속에 남아서 잊혀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그저 흥미로울 따름이다.
작년 쿠바의 어느곳에선가에서 찍힌 사진 (출처는 Der Spiegel) 이라는데... 그 어디를 보아도 그다지 "혁명적"이어 보이지 않는 (왜 그렇게 보이는지도 분석 대상이다...ㅋㅋㅋ) 한 여성이 그 유명한 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체계바라의 얼굴 사진처럼 맑스의 얼굴 모티브가 프린트 된 Top을 입고 있는 것이 보인다. 맑스를 기억하는 것은 참 여러가지 방식이리라....ㅋㅋㅋ.

2008년 3월 12일 수요일

Problem of color: 미국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자 당내경선에서의 "색깔론" (:))

먼나라 얘기지만...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 과정에서 Mrs. Clinton 쪽의 인사로부터 일종의 "(피부) 색깔론"이 제기되어 (즉, 오바마를 주로 흑인들이 지지한다는...혹은 오바마가 흑인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상징적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등의...) 문제가 되었고 앞으로도 간접적으로 Obama 쪽의 대중적 인기에 흠집을 내기 위한 기제로 클린턴 쪽에서 계속 사용할 여지가 있다는 추측이 있다.

이러한 "(피부) 색깔"론에 대해 오바마 측에서 자신들의 진영이 백인들이 투표를 한 당원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주에서 승리를 했었고 또 경선 초창기에 오바마가 클린턴에 비해서 흑인들 사이에서 그 인기면에서 열세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 주장의 근거 없음을 역비판 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색깔론이 유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오바마가 흑인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가 여성이었다면 오늘날의 그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라는 발언으로 대표되는 클린턴 쪽의 전략, 즉, 오바마가 그의 인간으로서의 실력이 아니라 백인 우월주의가 대세인 미국에서 흑인이라는 상징적인 위치로 백인 및 흑인 모두에게서 그의 실력 (?) 이상의 지지를 누리는 반면 역시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와 남성의 지위에 있어서 차별이 있는 사회에서 여성후보인 클린턴은 뭔가 그녀가 가진 실력 (?) 보다 폄하되어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상황을 묘사하려는 클린턴 쪽의 전략은 그 설득력이야 어찌되었든 선거과정에서 대립항을 세우는데 있어서 어느정도 유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사례에서만도 우리는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어떤 인간 및 그 인간의 행위 그리고 그 인간의 행위와 관련된 사건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통상 쓰이는 카테고리들이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을 관찰 할 수 있다. 각각의 카테고리들은 어떤 불변의 의미론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기 보다는 구체적인 국면에 구체적인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for all practical purposes 그일이 되도록 만드는 resource로서 사용되는 것이며 오직 그와 관련된 행위를 통해서만 그 국지적인 (local)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일예로 민주당이면 여성의 지위에 대해서 존중을 할 것으로 상정되는데 (일상을 사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이런종류의 일반화, 혹은 바꿔 말하면 "일상적 이론화"에 익숙하다.) 오바마 측이 외교적인 부분에 있어서 클린턴이 더 많은 경험을 축적 해 왔다는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면서 "그것은 퍼스트 레이디로서 참여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 부분에서 혹자는 그것을 여성에 대한 비하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물론 대통령과 비대통령 혹은 외교 전문가 및 책임자와 비 외교전문가 및 비 책임자의 "역할"에 있어서의 차이를 지적하려고 했던 발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오바마 측은 아마도 이렇게 주장하리라...) 누군가 퍼스트 "레이디"에 천착하여 해석하려고 한다면 (다소간의 억지를 무릅쓰고라도) 무의식적인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따지고 들 수도 있는 노릇이리라....ㅋㅋㅋ...즉 민주당 관계자의 이 발언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했는가"라는 질문 혹은 나아가 이 발언이 "어떠한 문화적 (sic!) Vorstellung들을 반영(그것을 발언자가 의식했던 아니던 간에...)하고 있는 가라는 질문은 카테고리가 내포하고 있는 그 어떤 고유한 내용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오직 (! 그렇다 오직) 그 논쟁의 결과를 통해서만 거꾸로 유추될 수 있는 그러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기사가 있어 사라지기 전에 링크를 걸어둔다. 이 기사의 말미에 쟁점이 될 만한 이슈들을 중심으로 민주당 두 경선후보자들과 공화당 후보의 정책들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Irak 파병 및 의료보험과 관련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문제들에 있어서 민주당 두 후보자들 사이 뿐 아니라 공화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들 사이에도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환경과 이민과 관련된 정책에 있어서는 양 정당의 후보들이 그 기본적인 골자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나저나 대외정책이 대통령 선거의 이슈가 되고 있으니...미국인들은 지금 미국 대통령을 뽑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일년에 한번씩 열리는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처럼 "세계 대통령"을 뽑고 있는가?

2008년 3월 11일 화요일

Endeavour 호가 우주로...STS 123 시작되다.



오늘 아침 학교에 나와서 메일을 체크해보니...
오늘이었다. Endeavour호가 지난번에 언급한 일본 Laboratory Module Kibo와 캐나다의 인간의 형상을 닮은 (:)) 크레인을 싣고서 우주정거장으로 출발한 것이 말이다. NASA TV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언제나와 다름없이 이 미션에 대해서 "종일 방송중"이다.

2008년 3월 10일 월요일

Korean in Space 1-5





어허...한국 최초의 우주여행자가 고산씨에서 이소연씨로 바뀌게 되었나보다.

우주관련 뉴스들을 전해주는 몇개의 인터넷 포털들에 가입을 해서 거의 매일 이메일로 자동으로 뉴스들이 들어오는데 거기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없었는데...우연히 우리나라 2위의 인터넷 포털인 다음에 들어갔다가 이 기사를 보고 잠시 추적을 해 보았다. (이러면 안되는데...ㅋㅋㅋ)

고씨가 뭔가 러시아 항공우주국의 보안규정을 위반해서라는데...뭘까? 잠깐 찾아보니 외부로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되어있는 훈련교재등을 가지고 나가고 뭐 그런 행동 (이 행동들 자체가 어떻게 묘사되는가도 그 자체로 분석을 요구하는 흥미로운 현상이다.)을 한 듯 한데...한국의 독자적 유인우주계획의 밑거름을 그래도 한번 마련해보려는 애국심의 발로에서 행해진 스파이 행위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부주의 였을까...ㅋㅋㅋ...심지어 독일 슈피겔지의 경우에는 스파이 행위를 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으로 제목을 땄던데 (offenbar geht es um Industriespionage)...아뭏든 그의 행동 (두차례에 걸친 교재의 외부반출)에 대한 해석들이 흥미롭다. 러시아 당국 입장에서는 "말안듣는 비협조적인 승객" (sic! 어떤 승객이 자꾸 그의 역할과 관련 없는 Cockpit을 들여다 보려고 한다거나 의심스럽게 자꾸 비행기 조종과 관련된 기술적인 측면들을 알려고 한다면 안전한 비행기 운항에 있어서 잠재적으로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고산씨의 행동은 "협조적 승객의 프로필"에 맞지않는 그러한 것이 될 수도 있겠다...)을 태울 수 없다는 얘기고 (궁극적으로...ㅋㅋ)...다른 한편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밝힌 국내 일부 언론들의 초창기의 반응들은 고산씨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긴시간 훈련을 받아온 "우주인" 으로 정의하고 이전에 이렇게 건강상의 이유가 아닌 이유로 "우주인이 교체된 적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는데...고산씨가 우주인 (러시아인들은 Kosmonaut이라고 부른다.)과 동일한 범주에 들어가는 인물인지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아뭏든 고산씨의 행위를 놓고 그가 어떤 범주 (Category)로 정의되는가에 따라 그의 행위 (Category bound activity 혹은 Category Predicates)의 의미역시 다르게 해석되는 것, 그리고 역으로 그의 행위가 어떻게 해석되는가에 따라 그가 어떤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지 그 상호규정적인 reflexive한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그리 나쁘지 않은 사례이다....우리나라 언론에서는 고산씨와 이소연씨를 "과학기술적 배경지식"과 관련된 분야 즉, 수학및 나노테크놀로지 등에서, 학위를 소유한 사람들임을 강조들 하고 있는데...(이걸 기존에 우주정거장에 다녀왔던 백만장자들을 소개했던 기사들과 비교해보자.) 어떤 기사 (특히 호주의 모 신문...) 의 경우에는 우주를 여행하는 "최초의" "한국인 남자" 임과 "한국인 여자"이러한 범주가 더 전면에 부각되기도 한다.

사실 대기권 밖에서 인간이 한 행동을 기준으로 우주인과 비우주인을 구분하는 것도 문제가 있긴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구 소연방의 가가린이 최초로 대기권 밖의 궤도에 진입했던 시기, 혹은 미국의 경우 머큐리 및 초창기 몇번의 제미니 미션이 있었던 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대기권 밖의 낯선, 그리고 생각컨대 인간에게 극악하게 적대적인 생존환경 속에서 "버티는" (ㅋㅋ) 것 만으로도 우주인의 칭호를 획득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현재..,일반인 백만장자들도 저 위에 올라가서 간단한 "실험들을 돕는" 마당에...이 살아남는 것을 넘어선 훨씬 복잡한 활동때문에 그 백만장자들이 이전에 지구궤도에서 버텼던 (!) 그 사람들 보다도 "더 우주인"이라고 말하기도 껄끄러운데 말이다...ㅋㅋㅋ...사실상 우주인이라는 범주와 그 우주인이 행하는 행위 (즉, 말을 막 만들자면 우주인적 행위 :)) 와 관련된 우리의 착상들 (그것이 일반인의 것이 되었든 혹 우주계획 참여자들의 그것이 되었든)도 변해왔을 것이고 (얼마전에 직업집단으로서의 우주인이라는 범주와 그들과 관련있다고 여겨지는 개인적인 프로필에 대한 우리의 Vorstellung들이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CSI 시리즈들에 비추어진 우주인상과 관련해서 생각을 남긴적이 있었다.)...또 앞으로 변해갈 텐데...어쨌든 잠정적으로 우주밖에 나가있는 사람들은 이제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는 건가? 하나는 "진짜 우주인" 다른 하나는 "유람객" (그럼 유람객은 유람객 답게 행동할 것이 기대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몇명의 백만장자들이 자신들의 우주에서의 경험을 유람객으로서 여러경로를 통해서 밝힌 것처럼 말이다. 만일 유람객이 우주인인 척 한다면...ㅋㅋㅋ...우스운 그림이긴 하겠다. 그러나 어쩌랴 그 두개의 범주가 뒤섞여서-언제나 뒤섞여 있지만 그래도 우주인들은 종종 자신들이 유람객인 것을 표출하지만 그래도 좀더 우주인임을 보여주지 않는가...ㅋㅋㅋ...예를들어 달에갔던 우주인들도 그곳의 경관에 감탄을 하고 심지어는 약한 중력을 이용해서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들의 주된 행동이 미션과 관련된 행위들임을 항시 "보여"주었다...그렇다 우주인을 우주인이게 만드는 것은 어찌보면 그들의 행위(심지어는 그들의 탄성조차)를 의미있도록 만들어주는 "조직적 맥락"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현상에 근접한 것일 수도 있겠다. 만일 그 조직적 맥락을 결여-아니다 "재정확보를 위한 좌석판매"가 그 조직적 맥락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조직적 맥락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옳을 지도 모르겠다.-하고 있다면 (작금의 한국 우주방문객들의 경우가 그러한데...) 사실 그들의 행위는 그 어떤 결과물을 남기거나 집단적 노우하우로 축적되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인지될 수 밖에 없는 경우리면 말이다:) 일회적인 2000만 달러 투자로는 결국 자리하나밖에 살수 없는 것이니...우리나라 관련부처분들은 NASA 및 러시아 항공우주국 내지는 중국 및 일본 항공우주국들과의 장기적인 협력 계획에 대해서 어떤 비젼 없이 이 번 일을 추진했단 말인가? ...hummmm

일이야 어찌되었든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최초의 우주 유람객으로 우주에 가서 그 경험을 마냥 즐기기만 하기에는 무언가 더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러나 그 Spielraum이 너무 제한 되어 정의하기 막연한 부담을 느끼고 있을 한국 대표분들의 상황이 그저 너무 불쌍하다. 그냥 유람객이어도 좋으니 (박사과정들 좀 유람했기로서니...ㅋㅋㅋ) 국가에서 엄청난 여행비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냥 즐기다 오면 안되나요...??? 나는 개인적으로 그냥 그랬으면 한다. 백만장자들은 뭐 꼭 돈값을 해서 갔다왔나요...그저....갈 수 있으니 갔다온거지요... 그냥 큰 복권 당첨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되나...하긴 돈이 좀 크긴 하네...2000만달러면...근데 다 그 돈 주고 갔다왔는데요 뭐...ㅋㅋ

아뭏든 졸지에 (???) 한국 최초의 우주여행객 (!)은 여성(!)이 되었다...(현재로서는 나는 이 이상의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가 힘들다...ㅋㅋ)

첨부된 그림들은 각각 Der Spiegel관련 기사와 Der Spiegel이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The Korea Herald의 관련 기사, 그리고 그냥 구글에서 무작위로 걸린 아마도 정말 무관심 함직한(ㅋㅋ) 호주의 The Heraldsun의 관련기사이다.
한겨레 인터넷 신문 관견기사 1, 2, 3


2008년 3월 8일 토요일

Korean in Space 1-4



이놈의 웹 기사들은 사라질까봐 안전하게 보관하려면 이렇게 화면복사를 하는 수 밖에 없다...독일 Der Spiegel의 경우는 발간 때부터의 전체 기사를 온라인 상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좀 그렇게 하면 안되나?
아뭏든 태극기 견장을 단 인물을 우주정거장에서 보게될 날이 30일 남았단다. Daum이 그래도 온라인 포털 2위라니 거기에서 인용된 (연하뉴스에서 Daum이 뉴스를 클리핑하는 모양이다. 인터넷에의 "인용"과 관련된 행위들은 "사회적 실재"를 구성하는 주요한 행위이므로 그 자체로 차후에 고찰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 역시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방법론은 기존의 "텍스트 분석" 방법이 되겠다. 특히 언어학적인 텍스트 분석보다는 Dorothy Smith나 Text in Context를 그 주제로 다루는 연구분야의 착상들이 유효할 것이며 일종의 내러티브를 통한 실재의 구성작업과 관련해서는 MCA-Membership Categorisation Analysis-류의 분석적 시각이 쓸모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사를 통해서 이 소식을 접했다. 밑에 달린 세칭 네티즌들의 반응도 재미있어 함께 화면캡춰하여 올려놓는다.

2008년 3월 7일 금요일

독일 대학도 판촉(?!)을 한다.

정말 흥미로운 기사...ㅋㅋㅋ
비교적 평준화 되어 있다고 들어왔던 독일 대학들이 판촉행위를 하다니...ㅋㅋㅋ...하긴 재정적으로는 얼마 도움도 되지 않는 "Exzellenz" 칭호를 얻기위해서 지난 2년간 독일 대학들이 보여왔던 히스테리에 가까운 (:)) 신경전을 보면...ㅋㅋㅋ....

구 동독지역의 대학들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하여...그리고 현재의 난국을 타개 (?) 해 나가기 위한 구 동독 지역 대학들의 눈물겨운 (?) 홍보계획....지원받은 재정의 3분의 1을 이래저래 광고비로 할당해야하는 눈물겨운 사연....그나저나 세칭 "우수한 학부생"을 유치하기 위해 대학당국자들이 세우는 계획이라는 것은 어느나라건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ㅋㅋㅋ

그나저나 글을 읽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하나 들었는데....만일 현재 대학생들이 출연하는 인기 드라마가 있다면...그 주 무대를 서울로만 하는 만행을 저지르지 말고...한번...다른 곳으로 해봄이...그렇다고 뭐 하버드 대학 이런대를 무대로 하라는 얘기는 더 아니고....ㅋㅋㅋ (여기도 Verliebt in Berlin이라는 드라마가 있는데-대학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드라마지만- 뭐 Verliebt in Bielefeld???...나라도 좀 안볼 것 같기는 하지만...ㅋㅋㅋ)


2008년 3월 6일 목요일

다른사람의 생각을 읽는다???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심리학자들...특히 Neuro가 붙는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 좀 너무 나이브 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머리를 까보면 거기에 뇌덩어리 밖에는 없다고 그렇게들 말을 해 왔건만...이 뇌 덩어리가 움직이는 것을 스캔할 수 있으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하긴 이전에 뇌의 움직임을 3차원 사진이 아닌 2차원 그래프로 (내가 피 실험자 였을 때 이거 뭐라고 한다고 들었었는데...EKG는 심장 박동 측정하는 거고...나중에 기회가 나면 함 물어봐야겠다.:)) 유추해야했던 시기와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하긴 인간의 몸 (뇌도 여기에 포함되는데...)이 인간의 정신상태를 반영(!)한다는 생각은 우리의 상식과 어긎나는 것도 아니고 하니....거짓말 탐지기도 그렇고...아니 너는 왜 그 사람만 보면 얼굴이 빨개지고 그래...ㅋㅋㅋ...B형 혈핵형은 바람둥이래...ㅋㅋㅋ

기쁨, 슬픔, 분노, 놀라움,,,,뭐 이런것들이 궁극적으로  뇌의 움직임으로 환원되어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다...거기에 응용분야는 반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

아뭏든 뇌의 움직임을 스캔해서 그 움직임을 가지고 피실험자가 무엇을 보고 느끼는 지를 재구성해낼 수 있다니...
이들의 연구가 앞으로 더 진전되고 이런 종류의 지식이 그 권위를 인정받게 되면 탐 크루즈가 나왔던 그 뭔가...음...그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것 처럼 그런 세상이 오게되는 건가?...ㅋㅋㅋ....가까운 장래에 길가는 어떤 여자를 흘끗보다가 뇌 스캔 기계에 들켜서 "성추행 가능범"으로 몰려서 (지금이야 생각하는 것만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겠지만....이제 그때가 되면 처벌의 기준도 달라지겠지...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명명백백하게(??? sic!) 들어났는데 처벌해야지...ㅋㅋㅋ) 철창신세를 지게 될 지도 모르겠다.,,대한민국 "아저씨들" 중 80퍼센트가 철창안에 있으면....생각만해도 재미있다...ㅋㅋㅋ...법정에는 판,검사 대신에 흰색가운을 입은 심리학자들이...ㅋㅋㅋ...그리고 뇌로부터 재구성된 화면을 확대해서 배심원에게 보여주기 위한 큰 화면....ㅋㅋㅋ...뭐 하긴 그렇게 되면  "도덕적 기준" 내지는 "매너"라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달라지기야 하겠지만서도 말이다....ㅋㅋㅋ

이와 관련된 또하나의 흥미로운 기사는 이곳.

2008년 3월 4일 화요일

Universität (bzw. Lebenswelt in Universitäten) im Wandel?



독일 대학이 변화하고 있나? 있다! 변환가?...ㅋㅋㅋ
교내 학보에 난 독일 대학(??)의 변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현상들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을 저장해 둔다.

졸업생 동문회의 경우는...참 만감이 교차하도록 만드는 재미있는 현상이다. 동문회와 관련한 한 우리나라는 초 선진국인가?...이전시기에 혹은 아직도 "소위 동문이라는 것"은 있을지도 모르는 많은 우연적인 요소들과 위험들을 배제시켜 줌으로써,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남는 노우하우" (ㅋㅋ)의 재생산 경로로서 일종의 구조적 안전판 처럼 기능했었는데 말이다...독일인들이 만일 그런 것을 찾고 있다면 말이다....ㅋㅋㅋㅋㅋ

이런 미래 비젼적인 (?) 혹은 비판적 시각들과는 또 별도로 진정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변화들이 있는데....
부쩍 많이 늘어난 "대학 교육자들을 위한 교육과정" (ㅋㅋ)을 알리는 공고문들이 그것이다. 어떻게 학생과의 면담 시간을 잘 운용할 것인가, 구두시험에 임하는 선생의 자세는 어떠해야하는가, 영어로 하는 강의방법, 효과적인 교습법 뭐 이런것들에 대한 강좌들이 지난 2년여의 기간동안 부쩍 많이 늘어났다는 것을 정말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동안 "암묵적 지식"에 해당되었던 영역들, 즉, 그리하여 일종의 개인적인 Kunst의 영역에 속했던 부분들이 이 이제는 "명시적"으로 되면서 "그 방법을 익히면 평균은 할 수 있는", 즉 그 역할을 다른 사람이 대치하더라도 별 말썽이 없을 그러한 종류의 "합리화 (sic! 죄송)된 영역으로 치환되어 가는 과정을 내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인가? 그 짧은 기간에 말이다....ㅋㅋㅋ

대학은 실험실??? (Kommunikationsspiel in einem Sprachspiel namens Experiment) 1-2


또 실험대상을 구하는 중....어차피 버리는 시간 밥값도 벌고 인류의 지식 증진에도 이바지하고...ㅋㅋㅋ
근데...4 유로는 좀 짠듯 그래도 40분짜리 실험인데...

2008년 3월 3일 월요일

대학은 실험실??? (Kommunikationsspiel in einem Sprachspiel namens Experiment)


공부하는 사람들은 좋으나 싫으나 일생중 오래 머물게 되는 대학, 아마 그 어떤 인류학자들도 이렇게 오래 그야말로 "몸담고 있을 수 있는" 그런  Field는 많이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자체로 이른바 "대학"이라는 것과 관련된 인간의 행위들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인류학적 시각으로 고찰되는 것이 그리 흔한일은 아닐 것이다.
오늘 Mensa에서 그 어느날과 마찬가지로 밥을 먹다가 책상위에 놓은 사진의 "구인 공고" (?)에 새삼스럽게 눈이 갔다. 언어학과 언저리에서 무슨 목적에선가 수행되는 실험에 참여할 피 실험자를 찾는 공고다. 지난 8여년의 시간동안 이 대학 안에서만 내가 피실험자로 참여했던 실험들이 4건이니...(나는 이런식으로 간접적으로 인류의 지식 발전에 기여한건가??? :))...대학은 어떤 면에서는 "협조적인 양질의 잠재적 피실험자"들의 보고인 셈이다. 현재는 방학이라 게시되었던 벽보들이 철거된 상태이지만...다시 학기가 시작되면 언어학과 뿐 아니라 인간과 관련된 분야만 하더라도 심리학, 인간/컴퓨터 커뮤니케이션 등등의 분야에서 그것이 디플롬 프로젝트가 되었던, 박사학위 프로젝트가 되었던 혹은 그보다 더 큰 팀 워크의 일환이 되었던 피실험자들을 찾는 광고문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모집된 피실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은  아마도 추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주장들이 인간 전체 집단에 대한 통계적 추정으로 이어지는 방식의 지식생산활동과 결합될 것이다. 특히 이 우연히 발견한 광고물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지점은 이 실험이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게임과 관련된 것 이라는 지점인데...이런종류의 "과제수행 실험"을 함에 있어서 항시 쉽게 간과되는 부분이 바로 그 "실험 상황" 자체가 Wittgenstein 적인 의미에서 "Language Game"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지점이다. 즉, 사회현상 연구자의 시각에서는 이것은 일종의 게임 안의 게임인 셈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이에 관해서 긴 이야기를 늘어놓기 위해서라기 보다 전부터 일상의 일부로 경험해 왔던 대학내 지식생산 활동과 관련된 현상중의 일부가 오늘따라 눈에 들어와서 잊기전에 여기 기록으로 남겨둔다.

2008년 3월 2일 일요일

고인이 된 Gail Jefferson

Conversation analysis의 여러 기념비적인 문헌들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1974년작 A Simplest Systematics for Organisation of Turn-Taking for Conversation.의 공동저자 3인 중 한명인 Gail Jefferson이 근 일년간의 암과의 투병끝에 69세를 일기로 운명을 달리 하셨다. 세 저자 중의 한명이자 CA분야의 시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Harvey Sacks는 그의 나이 40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Emanuel Schegloff만이 생존해 있는 셈이다. 사실 Gail Jefferson의 작업은 다른 두 저자에 비해서 그리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창시하다시피 한 Transcription 관행은 아직까지도 동분야의 사람들 사이에서 (물론 계속해서 세련화 과정을 겪어 왔지만) 일종의 기본 바탕이 되는 기본으로 자리 잡았고, Interaction 시의 웃음에 대한 연구 (즉 어떻게 웃음이 Interactive하게 Organize 되는지)는 대화에 대한 세밀한 녹취를 바탕으로 한 Conversation analysis의 분석이 인간의 Interaction을 분석하는데 어떤 힘을 가지는 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강력한 예로 인용되곤 했다.

내 지도 교수가 잠시 도미하였을 당시 독일어를 못하면서도 당시 내 지도교수가 가지고 있었던 독일어 자료를 바탕으로 Tag Question (여기 독일인들이 통상 예를들면 Das ist schön ne? 이렇게 문장 말미에 붙이는 ne, 영어로 치면 ...isn't it? ...is it? 혹은 ...dosen't she? ...does she? 뭐 이런 류들이 되겠다.)의 사용을 분석해주기도 (:)) 했다. 그녀가 사회학이나 언어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라 무용을 전공했다는 것도 상당히 독특한 부분으로 느껴졌었다. 혹, 무용가로서의 잘 훈련된 리듬감이 그녀로 하여금 쉽게 포착하기 힘든 "웃음이 조직되는 방식"을 분석해 내도록 해준 것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다. (:))

아뭏든 이제는 고인이 된 그녀를 위해서 동료 학자들이 쓴 부고를 읽다가 그녀가 아주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이른바 "대학과 관련된" 제도안에서 안정된 직위를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도 그럴 것이 Talk in Organization, Talk in institutional situation 뭐 이런 것을 했어야 나름 그럴 듯 해 보였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쉬지 않고 이 분야의 연구에 기여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네덜란드에 있었다.) 뭐 그녀의 삶을 잘 모르는 주변인의 입장이기는 하지만...대학에 잘 자리를 잡은 다른  CA학자들과 비교했을 때 이러한 그녀의 삶의 경력이 왠지 그녀의 죽음을 더 극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기도 하고...좀 더 안타까운 (?) 마음이 들도록 만든다.
아뭏든 전달될리는 만무하지만 혼자 마음속으로 그녀의 일생의 작업들에 경의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8년 3월 1일 토요일

이것들은 나만 빼놓고 꼭 자기들끼리...:)


여기저기 메일링 리스트에 등록을 해 놓았더니, 우회로 (Forum: Qualitative Sozialforschung)를 거쳐서 Berliner Methodentreffen에 대한 소식이 내 이메일 프로그램에 흘러들어왔다. 뭐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우습지만 도대체 이 긴 Info메일에 이런식으로 섞여있으면 어떻게 찾아서 보라는 건지...아뭏든...열심들이다. 그나저나 참여를 하고 싶어도 거기까지의 교통비 하룻동안 숙박비, 식비, 심지어는 참가비...당연히 머리속으로 손익계산을 따져보게 된다. 젠장...이 사람들이 웹페이지에 동영상 및 자료 올려주면 그거나 봐야하나...하긴 달라질게 없을 수도 있겠다. 그냥 유령처럼 홀연히 갔다가 몇개의 강연이나 듣고 데이터 세션에 가서 한두마디 거들고 (이제 이건 죽도록 싫다...ㅋㅋㅋ) 남들 발표문이나 한아름 안고 또 홀연히 돌아올 양이면... ㅋㅋㅋ. 

 어찌되었든 사회과학과 미디어와 관련한 글에서도 밝혔었지만 Berliner Methodentreffen과 관련된 웹페이지를 보면 사회과학자들이 미디어를 연구 대상일 뿐 아니라 자신들의 연구활동의 일부로 "재발견"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내가 이 정보를 흘려듣게된 경로인 Forum: Qualitative Sozialforschung의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동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정보교류 및 학술활동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데 주력하고 있는데 이 인터넷 공간 자체가 DFG의 후원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 사이트는 현재 독일어와 더불어 영어 및 스페인어까지 지원하고 있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향후 기존의 출판물 저널들을 밀저젖히고 이 사이트가 동분야의 최고 국제저널로 자리매김하게 될지 말이다...ㅋㅋㅋ...)

아뭏든...뭐 싸구려 컴퓨터와 웬만한 크기의 웹서버, 그리고 상시적으로 관리해줄 웹마스터만 있으면 되니...기술적으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하게 된 것이 사실이고...단지 우려가 있다면...(이 우려는 일부분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닌데) 거기서 이루어지는 학술 활동까지 저렴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사회연구가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하드웨어적, 비하드웨어적) 미디어들이 그들의 (전통적인!!!) 실재 재구성작업, 그리고 이른바 "학술적"이라고 불리우는 활동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에 대한 면밀한 고찰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한마디로 정말 우스운 상황-여기서 나는 절대 도덕적 규준을 세우고 옳고 그름을 판단 내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스운 것은 우스운 것이다.:p-이 연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후에 시간이 난다면 일예로 이른바 Offene Datensitzung 영어로 Open Data Session에 대해서 한번 적나라하게 살펴볼 기회를 마련해 볼까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 새로운 (?) 관행은 자칫 "사전에 준비를 안하면 안할 수록 얻는 것이 많다"는 지론(?)을 가진 사람들에게 악용(?)될 소지가 있다. 

이들에게는 이 새로운 관행은 "사회연구가 '익명화된' 싱싱한 뇌들을 발견하다!"라는 스포츠 신문 기사 제목을 뽑을 만한 그러한 뉴스거리가 될 수 있겠다. 적어도 현존하는 과학의 (많은 부분 개인적으로 그리고 그룹단위로 이루어지는) Qualification 및 보상 메커니즘에서 과연 이것이 아무런 여과없이 반가와 해야할 새로운(?) 지식생산관행으로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져야할지는 나 스스로도 의문이다.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나 혼자 까다롭게 빡빡하게 구는건가? ㅋㅋㅋ...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정말 양심적(?)인 사회연구가가 만일 수많은 Open data session 중에 어느 하나에서 참석자중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교수도 아니고...박사도 아니고) 그 누군가의 소위 Beitrag에 의해서 결정적인 연구에 있어서의 진전을 가져왔다고 한다면...그는 어떻게 그 Beitrag을 인용해 줄 것인가? 그 Beitrag을 한 사람은 이 Open Data Session이 과학활동의 일부인지라 거기에서 능력있게 지식생산활동에 기여할 수 있음이 증명된바 그에 상응하는 자격 및 보상을 획득할 수 있는가?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나라도 온몸을 던져서 하겠지만 말이다...혹자는 선생님의 따듯한 칭찬 한마디와 "네말대로..."라는 말로 만족할 수도 있겠다...그것도 보상이라면 보상이니까...ㅋㅋㅋ)

간략히 말하면, 많은 부분 Open Data Session에 대한 논의가 (이걸 주로 Conversation Analyist들과 Objektive Hermeneutiker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이 가져다 주는 가능한 인지적 (혹은 인식론적) 효용에 맞추어져 있어서 그것이 수행되는 구체적인 사회적 맥락 (우선 작게는 학문적 Qualification과 보상)에 대한 고려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 Open Data Session은 "공식적 과학활동"과 "비공식적이지만 과학적인" 활동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거 재밌겠다...:) 사실 저널 시스템이 공식적인 과학활동으로 자리잡기 전에는 동분야 종사자들 사이에 상대적으로 "덜 공식적이지만 그래도 특정한 분야의 지식생산과 관련된" 서신교환을 통해 정보전달 및 비판들이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에...이러한 상황적 유비를 사용한다면 우리의 활동도 그러한 맥락에서 다시 재조명 해 볼 수 있겠다.) 인지적 효용과 그 결과들에 대한 Qualification 및 보상이 항상 맞물려 돌아가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별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Das ist ja gut so!...하긴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어느 물리학자 그룹이 노벨상을 탔다고 해서 그 물리학자들에게 실험 기계를 납품한 사람들도 그것을 공동 수상해야한다는 것은 어불 성설이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Open Data Session에서 참여를 하는 사람들은 워드프로세서 납품업자도 녹음기 납품 업자도 아닌...지식의 내용을 함께 생산한 사람들이다...문제 아닌가?:)

인문학의 전반적 위기?????...그나마 사회학은 낫다?????




얼마전 이곳에서 철학 논문으로 학위를 취득하신 우리나라 분과 (이렇게만 밝혀두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제목에 나온 것과 유사한 이야쪽으로 얘기가 흘렀었다. 우리나라 대학이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이것도 들은 얘기니 직접 부딪혀 봐야 알 일이다.) 워낙 학부생들 중심으로 운영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라 학부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과는 그것이 학부제라는 제도와 맞물려서 "절대적인 학부생 재생산"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 사실인듯 하다. 벌써 근 10년전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때 당시에도 이미 문을 닫는 학과들이 있었고, 이것은 다시 "향후 00과 교수충원 계획 없음"이라는 동분야 학위 취득자들에게는 암울한 소식과 연결 되었으며 여기저기서 "00대학의 xx학과가 yy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더라"라는 소식들이 들려왔었다. 이른바 "분과간 연계"라는 유행아닌 유행 (?)을 타고 또 여기저기서 연구계획에 "분과간 연구"라는 취지가 밝혀지면 연구비를 수령하는데 유리하다더라"라는 말도 많이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이와 관련된 글을 쓰는 이유는 그 철학박사님과의 얘기가 있고난 바로 다음날 (혹은 그날이었나?) 우연히 발견된, 학교 건물의 한쪽 구석에 외롭게(?)붙어 있던 포스터가 갑자기 생각나서다. (다행히 포스터가 그자리에 제대로 붙어 있어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이 포스터는 정선생과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가려 건물을 나서는 중간에 발견되었는데...행사가 행사이니 만큼 (무려 일종의 독일 철학자 대회다...:)) 큼직한 코팅이 된 (다른 게시물들이 A3 규격들이니 크기는 짐작이 가리라) 나름 디자인에 신경쓴 그런 포스터였다. 이 글의 맥락에서 중요한 점은 포스터에 언급된 사람이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이 철학대회에서 철학의 세부분야들로 언급된 부분들이다. 전통적인 철학 고유의 분야와 더불어 혹자 (누구겠는가 과학지식사회학자중 그 누군가다...:)) 가 일부러 깍아내리려는 의도로 한 말이겠지만 철학이 "과학의 시녀", 혹은 좀 좋게 말해서 "과학이 가시는 길을 닦는 길닦이" 노릇을 자처했을 때 우리들에게 익숙한 분야들이 눈에 띈다. 불현듯 벌써 17 혹은 18년전 학부 방법론 시간에 들었던 이른바 "실증주의 논쟁"에 대한 얘기가 떠오르고 다시 약 10년전 석사 코스웍때 들었던 "사회과학 철학"이라는 과목이 생각났다. 분과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 더이상 "사회과학이란 무엇인가", 혹은 "사회과학을 여타의 과학과 구분지워주는 부분은 무엇인가", 혹은 더 나아가 "과학은 무엇인가" 내지는 "'과학적'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좀 심하게는 "과학과 여타의 인간의 지식활동을 구분지워줄 그러한 것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이러한 류의 질문은 필요가 없는 것인가? 사회학 내부에 그 전설적인 실증주의 논쟁이 있었다던 40여년 전 많은 사회학자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을 이전의 철학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논의들로부터 빌려온 테제들을 기반으로 추구했었고, 일부는 위에서 언급한 질문들에 대해서 대답하는 독자적인 방식들을 발전시켜왔다. (나는 여기서 주로 과학사회학자 내지는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새삼스럽게 철학대회를 알리는 포스터 속에서 철학자들이 아직도 (?? :)) 이 분야에 대한 논의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상기되었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자칭 사회학자가 되려는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서 현재의 철학자이 어떻게 논의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아니 알고 있는가는 어쩌면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야 몇개의 저널들을 훑어보면 될테니까...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전에 사회학이 태동하던 시기, 그리고 사회학의 내부에서 있었던 자기정체성 찾기논쟁때  그랬던 것처럼 분야를 넘나드는 그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끼며 또 그것을 실행할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될 것이다. 어쩌면 분과간 연계 (적어도 철학과 사회과학사이)는 이전에 이미 있었고, 철학은 자신의 분과테두리를 넘어서는 지식생산의 맥락 (궂이 현학적인 단어를 도용하자면 인식적 문화 Epistemic Culture)에서 응용되어 왔었다. 내 짧은 생각이지만 철학은 좀더 많은 김용옥을 생산하지 않아도 대학 안에서 자신의 청중들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철학은 언제까지 인접분야의 비전문가들이 자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제멋대로 000에 대해 떠드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 이런 활동에 만약 혹자가 응용분야라는 명칭을 부여한다면 그렇다...철학은 이전에도 충분히 쓸모가 있었고, 지금도 충분히 쓸모가 있다. 궂이 새롭게 치장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들이 학교 한 구석에 외롭게 붙어 있는 멋들어진 포스터 처럼 (벌써 이 상황 자체가 뭔가 말해주는 것 같지 않은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철학은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의 말에 몰래 (?!) 귀를 기울여 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지 싶다. 그들이 단순히 얘기를 들어줄 청중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할 상대를 찾는다면, 누가 아는가 그 몰래 엿듣던 청중들이 반갑게 맞아줄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