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8일 수요일

차별에 저항하며....: 나찌정권때의 동성애자 학살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비 vs. 오늘따라 여기 예쁜 사내들이 많이 모였네...



베를린 나찌학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기념조형물들이 서있는 "바로 맞은 편"에 나찌정권 당시에 희생당한 동성애자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 조형물이 개장(?) 되었나보다. 나찌즘으로 대변되었던 일련의 (민족적, 혈통적, 성적...한마디로 사회적) 특정 (사회적) 카테고리들에 대한 차별과 선입견 (?!)들이 낳은 비극을 잊지 말자는 취지이리라. 
2003년에 이 조형물의 건립이 허가나기까지 아마도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는 모양인데...하긴 나찌학살 희생자라는 큰 범주 안에 다시 동성애자들을 부각시켜야하니 그것이 과연 혹 희생자들에 대한 사회적 감정을 희석화시키지나 않을까하는 걱정들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 건립된 조형물의 작은 창 안으로 들여다보면 보인다는 입맞춤하고 있는 두 남성들의 사진을 나찌 희생자 추모 기념물들 사이에서 보게 된다면 많은 이성애자들은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기사의 내용대로 "동성애"는 아직까지도 사회적으로 "정당한 행위"로 받아들여지는데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혹은 예를들어 주요 정치행위자들이 그러한 도덕적 가치를 지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리라.
잠시 생각이 드는 것은 만일 나찌 희생자 기념물에 남, 녀 (엄밀하게 말해서 남, 녀인 것으로 보이는...) 유대인들이 입맞춤을 하고 있는 장면이 게시되었다면...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기념비의 성격과 관계가 먼 그런 사진으로 취급될 것이다. 벌써 남성들끼리 (엄밀하게 말해서 남성들인 것으로 보이는) 입맞춤 하고 있는 것은 이렇게 이성간에 입맞춤 하는 것처럼 "당연스러운 별거아닌 일상적이며 통상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긴 나의 고국에서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심지어 (ㅋㅋ)  남녀가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입맞춤 하는 것이 "뭔가 각별해 보이는" (그럼으로써 때로는 설명이 첨가되도록 만드는...뭐 예를 들면 용기있는 세대니...자신들의 감정 표현에 충실한 세대니...드라마의 영향이니...뭐 그런종류의 것들) 그런 것이겠지만...하긴....어디선가...미녀들의 수다에선가....일부 서방국가 애들도 공공장소에서 이른바 "진한 입맞춤"을 나누는 것은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입맞춤"에 부여되는 의미도 여러가지가 있는셈...입맞춤은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그럼으로써 (당사자들 이외의 타인이 주변에 있을때)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 (Goffman이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esp. in public space) 류의 연구들에서 사회현상에 대한 이런식의 접근은 좀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편이다...ㅎㅎ) 으로 취급되기도 하고...때로는 공적인 "사회적 장면"을 침해하는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는 것일게다....ㅋㅋ. 아뭏든 조형물을 계획한 사람들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이러한 일종의 Commonsensual Knowledge of Social Order (CKSO) 를 고려하고 있으리라...

그래...그렇다 바로 나도 그 CKSO에 지향하고 있기에 다시한번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꼭 그 기념비에 남성끼리 "입맞춤" (따옴표 강조에 주목하자 남성에 따옴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입맞춤에 강조점이 있다.) 하는 사진을 넣었어야 했을까? (여성동성애자 그룹에서 왜 남성들만을 사진에 나오도록 했는지를 따진 것은 일단 논외로 하자.)...나찌 희생자 기념물에 그들도 다른 인류와 동일한 인간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남녀가 "입맞춤" 하는 사진이 전시 한다면 사실 그것도 어째 어색해 보일텐데 말이다....

취지야 충분히 이해하지만....이렇게 생각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자기에게 익숙한 "희생자 '진지하게' 추모하기" 방식을 역설함으로써 "동성애자" 희생자 보다 동성애자 "희생자"임을 강조하여 은근슬뻑 카테고리들을 뭉뚱그러보려는 (혹은 아마도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비추어질) 나는  약간 아직은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될 수도 있겠다.

기사 마지막에 인용된 (마치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편견없어 보이는...ㅋㅋ) 할아버님의 말씀이 귀엽다...ㅎㅎㅎ: "오늘 여기 예쁜 사내들이 많이 모였구면"...87년 이른바 서울의 봄 (덧글에 아마도 (:)) 박선생께서 이 개념에 대한 오용을 수정해 주셨습니다. "87년 6월 민주화항쟁"이라는 역사적 장면을 지칭하고자 했음...ㅎㅎ)을 경험했던 어떤 분이 이 시절 자신의 기억은 유학중 잠시 고국에 들렀다가 시청앞 분수대에서 그 물에 발을 담그어 보았다는 것 (이건 일종의 일상으로부터의 파격이었다는데....그렇지...) 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그 양반은 87년 시청앞 분수대 주변을 메웠던 학자들로부터 이래저래 그 수많은 의미들을 부여받는 "무명의 역사적 인파" 중의 하나였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Spiegel Online에서 퍼온 사진 때문에 미풍양속을 해치는 사진을 게제한 죄로 이 블로그 폐쇄되는 것은 아니겠지?...ㅎㅎ

댓글 8개:

中虛 :

서울의 봄은 87년이 아니라, 1979년 10.26 이후부터 1980년 5.18 이전까지의 기간을 말하는 것일걸...
Holocaust Mahnmal에는 여러번 가봤지만 그런 것이 준비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군. 하지만 재미있기는 하네. 우선 레즈비언들의 반발이... 2년 후에는 레즈비언의 Kuss라... 어쩐지 동성애의 부자연성 혹은 불연속성 -아니면 아예 그런데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그런 사실- 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 다시 2년 후에는 쉬불인가? 만약 "남녀"간의 입맞춤이었다면 적어도 그런 문제(번거로움)는 없었을텐데... 적어도 類적인 교체가 필요한 그런.
게다가 끊임없이 재생되는 비디오가 내장된 그런 기념비? 그 또한 불영속성을 예고하는 듯한 느낌... Autonomie 역시 결핍... 그런 의미에서 Normalisierung이 아닌 Anerkennung을 원한다는 말은 매우 적절하게 들린다. 누군가 전기를 끊어버린다면... 누구말처럼 Hakenkreuz는 아직도 있지... 조금 암울...
평범한 사회학적인(?) 관찰을 하자면, 동성애는 적어도 생존이 물질적으로는 보장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고대의 동성애들의 경우에도 그렇고, 물론 그때는 계층의 문제였지만... z.B. 자년는 보험! -prs-

JGJ :

ㅋㅋㅋ...오류에 대한 지적 감사드림다...ㅋㅋㅋ
역시 제가 시대구분에 사용하는 개념들에 약하다는 것 (혹은 그것을 "지나치게" 등안시 한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오류였습니다....그나마 87년 이라고라도 명시를 했으니 망정이지...혹은 스스로 개념상의 정확성에 의심을 하여 일종의 Redundanz로 년도를 덧붙였었던 것이 이닐까 변명을 해 봅니다....ㅋㅋㅋ
아마도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라고 지칭되는 "역사적 장면"을 언급하고자 했던 것 같네요...ㅎㅎ

JGJ :

동성애의 흥미로운 점은 이들 주장의 "실용적 논리" (practical logic) 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이들은 한편으로는 "사랑의 행위"를 "종의 번식"이라는 "기능적 필요성" 즉, "자연"과는 구분하는 지극히 문화적인 (그럼으로써 사회적인) 가치정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또 "많은" (전부다라는 얘기가 아님)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성적 지향"을 자신들의 사회화 과정의 산물이 아닌 자신들의 "자연적 본질" (즉, 태어나면서부터 그랬다는 등의...)과 등치시킨다는 점이다. 나아가 타생물에도 유사한 현상이 관찰되었음을 증거로 이것이 단순히 자연계의 Anomalie가 아니라 모든 종에 걸쳐서 나타나는 Normal한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측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렇게 되면 "동성애"는 사회병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이른바 "사회"와 "자연"의 구분은 행위자들에 의해서 엄밀한 (과학적인 :)) 논리적 정합성이 아니라 일종의 practical한 논리라고 할 수 있을 그러한 것에 맞추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中虛 :

미안하지만 또 하나의 오류지적... ("ㅋㅋㅋ")
"등안"은 등한이 맞는 말, "等閑(혹은 閒)"으로 쓴다. 그리고 나는 정이 아님.

---(댓글답게 두서없음!)---

동성애자들의 실용적인 주장이 흥미롭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그들의 주장이 가진 Paradoxie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태생적이며 (즉 사회화를 통해 획득된 것이 아니며), 동시에 문화적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인데 -적절한 요약이 되는지?-, 실용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역설을 나름 entfalten하는 방법이 아닐지... 즉, 문제는 언제나 당사자이기 때문인데, 이 말은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은 그런 역설을 감내하거나, 극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평범한 말이지만, 좀더 "학문적인(!)" 방식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곧 das paradoxe Problem ist nach Einheit gestellt, deshalb muss man das praktisch lösen, aber wie? Nur eine ist möglich, nämlich "zeitlicherweise", mit anderen Worten, zeitliche Grenzeüberschreitung, also einmal diese und andersmal andere Seite, oszillieren zwischen beiden Seiten.
왜냐하면 다른 차원의 해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Ego/Alter) 혹은 존재론적(sein/nicht sein) 구분짖기는 "문화적(즉, 역사적) 가치정향"에 의해서든, 아니면 "태생적(자연적)"으로든 이미 거의 확정되어 -다시말해 경계를 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를테면 "내"가 비록 동성애 취향을 버리는 경우, 내가 내가 아닌 말하자면 타자가 되는 그러한 존재의 전화는 가능하더라도, 그 경우에 그는 더이상 동성애자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에서의 변화는 없다. 혹은 내가 동성애자"이거나 아니거나"의 경우에도 "이거나 아니거나"의 구분이 나를 Einheit로 하는 경우에는 변화가 없다. 즉 경계를 넘지 않는다. 더구나 동성애가 일종의 질병이 아닌 이상 이다가 아닐 수 있는지도 궁금하지만-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 사회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스스로도 그때그때 적합한 해결(혹은 원하는 "답"을 제시하는 -예를 들어 동성애는 "개인"의 -역사적으로 선택가능하게 된- 성적취향일 뿐이오라고 하든지 아니면 태어나길 그렇게 한 걸 어쩌란 말이오라고 하든지...)방법을 찾도록 (sich selbst so oder so zu bezeichnen) 방치하고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일종의 변명 혹은 거짓말 -굳이 변명하거나 거짓말할 필요가 있다거나 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과 관련지을 수 있다고도 생각되는데, 말하자면 단지 상황을 적절하게(praktisch) 모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만이 말한 것처럼 거짓말은 존재가 태생적으로 선결정되지 않는 사회, 그래서 개개인의 Motivvortäuschung이 가능한, 그 결과 언제나 의도를 의심할 수 있는, 해야하는, 즉 근현대사회에서나 본격적인 의미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치에서의 위선은 전근대 사회의 경우 죽음에 이르는 중죄(欺君罔上)였지만, 근대에 들어서자 오히려 정치의 본질이 되었다.
동성애는 성역할의 자주적(사회적,후생적, 또한 그런 점에서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개인적") 결정과 관련되어 있는데 -그런가?-, 이는 곧 위에서 말한 것(Motivvortäuschung/-verdacht)과 같은 상황에 성의 문제마저도 귀속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즉, 누군가(마음에 드는 이성 혹은 동성)를 만났을때, 먼저 "동성애자입니까?"라는 의심이 가능(혹은 불가결)해졌다는... 흥미롭다.
나아가 Anerkennung(z.B. coming out)과 Normalisierung(so etwas ist nicht nötig)이라는 동성애자들의 Programm도 흥미롭다. Individualisierung der Sexualität nach eigenem Anspruch (oder Selbstliebe)! -prs-

中虛 :

그리고 댓(덧)글 놀이는 안하냐? Kommentar가 달려있는 글이 왜 없어? 그런 의도로 만들었다고 누구한테 들었는데... Neue Intransparenz!?
Luhmann, 1984, S. 83: "Der Buchdruck (in diesem Fall aber das Geschriebene -prs.) eröffnet neue Möglichkeiten ..., die für andere nicht ohne weiteres einsehbar und kontrollierbar sind."

JGJ :

aㅋㅋㅋ....
필명이 한자에다가...
Holocaust Mahnmal에 여러번 가보셨다는 점으로 미루어 Berliner이신 듯 하고...ㅋㅋㅋ...
Luhmann을 직접 인용하고....
-prs-라는 표식을 사용하는 것으로보아...
박선생 아니시오..ㅋㅋㅋ

내 블로그에는 아마도 지금까지는 정선생만이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ㅋㅋㅋ...그래서 정선생이 왠일로 한자 필명으로 바꾸셨나 하고 생각했소이다.

그나저나 정선생이나 내 블로그는 들여다고보 이렇게 가능한 (:)) 오류도 수정해주고...무슨 취지로 쓴 글인지 따져 물어볼 수도 있고 (:)) 그런데...

어서 나도 본인의 블로그에 초대해 주시오...ㅋㅋㅋ

정광진 :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정광진 :

후후^^ 덧글이 '자그만치' 6개나 (음, 기록이다) 달려있어서 무슨 일이 난 건 아닌지 들어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Ueberraschung이구만.근근히 유지되던 기존 '덧글 문화'를 뿌리째 흔드는 뉴페이스의 진지함과 필력... 우리 중허선생이 보여 줄 활약을 기대하는 바이오.꼼꼼히 읽지 못한 탓에 내용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기로... (신문제목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