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진에 의한 사망자 추정 숫자가 5만명까지 예측되고 있는 가운데...지진이 일어났던 당시 촬영된 영상물들이 Youtube를 통해서 접근가능해졌다. 처음 두건의 영상자체를 통해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했던 사람이 진정으로 "예상치 못한 사건에 대한 목격자"였음을 알 수 있다. (첫번째 것은 심지어 일본취재단이 우연히 포착한 장면인가본데 그들이 전문가들임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들면 통상 영상을 촬영할때 어떤 사건 및 사람들의 움직임에 대한 촬영자의 "기대 및 예상"이 촬영자로 하여금 "현상을 찾아가도록"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만들고 그에따라 사람이나 사건의 촬영이 어떤 프레임을 따라서 일관되게 담겨지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데 반해서 이 영상은 촬영자 자신이 (적어도 초반에는) 이러한 프레이밍 자체가 힘든 상황에 처해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영상을 사건 이후에 언론에 의해서 촬영된 영상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비디오는 페쇄회로 TV에 찍힌 것인듯, 촬영자가 직접 사건을 카메라를 움직이면서 촬영한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아뭏든 크게 3가지의 서로다른 종류의 영상물이다. 한종류는 카메라가 촬영자의 시선을 대신한 셈이고 또다른 한가지는 상황에 대한 촬영자의 해석과 기대 및 예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고 마지막의 CCTV는 마치 Conversation Analysis에서 그렇게 하는 것 처럼 카메라 앵글 (혹은 마이크가 잡아낼 수 있는 범위내의 소리)안에 잡히는 상들을 카메라를 고정시킨 상태에서 (따라서 여기서 카메라에 맺히는 상은 촬영자의 상황에 대한 해석이나 기대에 따라서 변화한다고 볼 수 없다. (물론 사전에 카메라를 이런 앵글로 고정시킨 것에 담길 영상물에 대한 촬영자의 해석과 기대가 전혀 반영되지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이런 적어도 세가지의 서로다른 종류의 영상물들은 또 서로다른 분석의 대상들을 제공해준다.
흔히들 많은 부분 텍스트 및 영상물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구조주의적 언어이론에 입각한 의미론적 해석들을 많이 하는데 (Langue와 Parole을 나누고 Sinifie와 Sinifiant을 나누고...의미의 표층과 심층을 나누고:)), 이것은 텍스트와 영상물을 제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그 텍스트와 영상물에 의도적이던 의도적이지 않던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라는 친숙한 상식에 근거하여 그 의미를 재구성해내는 작업이 분석이라는 친숙한 생각에 근거한 측면이 많다. 한편 다른 종류의 영상물들의 경우, 우선 움직이는 카메라의 경우에는 촬영자가 촬영되는 대상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혹은 "대상들 속의 Ordnung을 추론해가는 과정"을 관찰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 (카메라가 Hermeneutisch한 과정을 간접적으로 관찰가능하도록 해준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세번째 종류의 영상물들은 의미형성과정이라기 보다는 사건에 대한 (기술적으로 왜곡된 혹은 부분적인) Konservierung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재난과 관련한 비디오 영상물을 놓고 이런 식의 얘기를 늘어놓는 것이 좀 안된 일이기는 하지만 당시 그 지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살펴보는데 인간들이 사용하는 영상도구들이 사회연구가들이 사회현상들에 접근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그것과 그 종류에 있어서 동종의 것들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갑자기 Gregory Bateson과 Margaret Mead간에 있었던 인류학자가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찍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Stativ 위에 카메라를 고정시켜놓는 것이 옳은가를 놓고 있었던 설왕설래가 떠오른다.
자! 어떤 것이 더 "객관적"인, 아니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가?? :) 이런 종류의 국지적 비디오 영상물들인가...아니면 사건에 대한 전혀 다른 또다른 종류의 다양한 수준의 추상화들 (예를들면 지진의 강도, 사망자 숫자, 경제적 피해규모, 좀더 세부적으로는 연령별 사망자수, 소득수준별 사망자 수 등등) 인가, 또는 직접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경험담인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