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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egel Online이 Washington Post (역시 Online)의 기사를 원용하여 작성된 기사. (나는 요즘 이렇게 "소식"들이 여러가지 맥락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인용"-그게 "펌"이던 Reformulation이던, 요약이던 그 무엇이던 간에-되는 현상이 재미있어 죽는다...ㅋㅋㅋ)
왜 핸디 사용자들이 문자를 많이 사용할까? (문자가 공짜일 경우가 많고 또 여러사람에게 한꺼번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방에 경제적 합리성으로 환원주의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그 말도 일리는 있다고 얘기해줄 수 있겠다. :)) 왜 가끔 의도적으로 핸디를 꺼놓는 일이 생기는 것일까? 왜 직접 얘기 할 수 있는데도 자리에 쪽지를 남기는 경우가 있는 것일까? 왜 만나서 얘기할 있는데도 이메일을 보내는 것일까? 왜 사장도 전화와 핸디가 있는데 꼭 비서를 거치는 것일까? 왜 집에 있으면서 전화를 안받고 Anrufsbeantworter나 Mailbox로 연결될 때까지 의도적으로 기다리를 일이 있는 것일까?
일상적으로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목도되는 (사회적)현상들이 이와같은 질문을 하도록 만든다.
여기 미국의 한 회사가 slydial이라는 솔루션을 내놓았다. 이 무료 서비스를 통해서 핸디사용자의 Mailbox에 수신자의 핸디가 울리는 일 없이 (즉, 핸디 수신자 모르게)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 가능하다. 기사에는 상대방을 속이려는 의도로 할 수 있는 몇가지 이 솔루션을 이용한 트릭들이 언급되어 있지만 (일종의 Gedankenexperiment이다...sic!)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경우 꽤 유용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대면접촉이나 전화통화를 통해서 예를들어 초대를 받았다고 하자 (혹은 상대가 "내일 저녁에 시간 있냐"고 애기를 꺼냄으로써 초대를 할 조짐을 보인다고 하자...ㅎㅎ)...그 어떤 이유에서든 이 초대를 거절하여야 할 때 (혹은 거절하고 싶을때...ㅎㅎ) 빈번히 목도되는 것이 그 초대와 그 뒤를 이은 답 사이의 잠깐의 시간상의 공백이다. 그리고 그 거절에 대한 해명이 뒤를 따른다. (여기에 가끔 초대한 사람이 참여하기도 한다. 즉, 거절하는 사람이 적합한 이유를 댐으로써 체면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즉, 초대에 대한 거절은 대면 접촉과 전화통화 상황 (다시 말하면 synchron 한 상황)에서는 초대한 사람과 초대 받은 사람 모두의 상당한 (?) 사회적 노동 (social work :))을 수반하는 것이다.
만일 초대를 거절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초대에 대한 답을 미루어 두었다가 이 서비스를 통해서 상대방의 핸디에 음성메일을 남겨놓는다면?....ㅎㅎㅎ...재미있는 것은 특정한 사회적 활동을 수행하는데 있어 특정한 미디어 (혹은 그 미디어의 특정한 Eigenschaft들, 혹은 기술적 가능성들) 가 선호될 "가능성" (오직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뭏든 이 회사 그것이 다년간의 연구가 되었던 센스 있는 직관이 되었던 인간의 핸디를 통한 의사소통이 조직되는 방식에 대한 통찰에 근거 이 서비스를 시작한 것임은 틀림 없는 듯...재미있는 착상이다.
새로 도입된 (?) 테크놀로지와 기존의 (일상적인) 세상이 (사회적으로) 조직되는 방식간의 관계에 대한 Harvey Sacks의 통찰이 새삼 연상되도록 만든다. 안락 의자에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이 생각하기에 핸디가 언제나 연락이 닿도록 만듦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구속 (?)할 것 처럼 보이지만...ㅎㅎㅎ...전화통화가 시작되는 도입부 (누군가 전화를 걸어서 가족 구성원중 누구를 바꾸어 달라고 하는 부분까지...)를 분석하는 와중에 Sacks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글에서 Sacks가 전화통화상에서 비서의 역할에 대해서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연관된 다른 저자의 글에서 Anrufsbeantworter와 Sacks가 비서의 filtering 역할에 대해 언급한 것이 비교되어 논해졌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마디로 Anrufsbeantworter는 부재시에 전화를 녹음한다는 본연의 기능 (?)을 넘어서 그 존재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Interaktion 상에서 비서가 수행했던 일종의 Filtering을 수행하는 기능을 기계적으로 떠맡기도 한 것이다... 아래의 인용문에도 언급되었듯...기술적 가능성이 기존에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가 조직되는 양식안에 "안착"을 하는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That's a funny kind of thing, in which each new object becomes the occasion for seeing again what we see anywhere; seeing people's nastinesses or goodnesses and all the rest, when they do this initially technical job of talking over the phone. The technical apparatus is, then, being made at home with the rest of our world. And that's thing that's routinely being done, and it's the source for the failures of technocratic dreams that if only we introduced some fantastic new communication machine the world will be transformed. Where what happens is that the object is made at home in the world that has whatever organisation it already has. (s.548 Harvey Sacks (1972(1992)) Lecture3, Spring 1972, in Lectures on Conversation: Volume II, Schegloff, E.A. (ed.), pp. 542-553. Oxford:Black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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